모멘텀 전쟁(War of Momentum)
-SNS가 한미대선에 미친영향(2)
*1편(투표는 전염된다)에서 이어짐
소셜(Social)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즉시성’이다.
SNS에 가입한 이용자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트위터에서 140자 이내의 메시지를 올릴 수 있고 페이스북에서는 글자수 제한없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더구나 빠르다. 단 한번의 리트윗 버튼으로 자신의 팔로어에게 삽시간에 퍼트릴 수 있다.
이는 마치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같다. 사진 촬영하고 현상, 정착, 인쇄가 동시에 이뤄지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처럼 SNS는 메시지 작성, 전달, 배포가 동시에 이뤄진다.
이 같은 즉시성 때문에 SNS는 ‘이벤트’에 강한 매체가 됐고 신문, 방송, 라디오 등 기존 매체는 SNS와의 속보 경쟁에서 완승을 거뒀다.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이벤트는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드라마(예를들어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런던올림픽에서 주최국 영국의 단일팀을 이기는 이변)가 펼쳐지고 우사인 볼트, 리오넬 메시와 같은 전설이 탄생하기도 한다.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에는 각종 뉴스와 드라마가 동시에 나오는 이야기의 샘이기도 하다. 이 같은 드라마는 곧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고 사람들의 ‘공유심(Willingness to share)‘을 자극, 트위터나 SNS에서 활발하게 메시지를 나누고 논쟁하게 한다.
특히 대통령 선거는 상징성 때문에 정치 이벤트 중에서 가장 많은 드라마와 이야기꺼리(스토리)가 탄생하는 공간이다. 한 후보는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것을 가져가게 돼 있고 패배한 후보는 역사에서 잊혀지게 되는 ‘Winner Takes it All’의 게임이다. 대선은 공유심이 폭발하는 최고의 이벤트인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2012년 주요 공유(Sharing)된 트렌드를 한 회사에서 분석한 것이다.
캠프에서는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이고 유권자에게는 선택의 결과를 궁금하게 하는 대통령 선거는 이용자의 ‘공유심’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이벤트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11월 6일 전세계에서 발생한 모든 소셜 메시지 중 13%가 미국 대선과 관련된 것이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코리아에 따르면 대선 캠페인 중 3차 TV토론(2012년 12월 16일) 당일은 처음으로 트윗 100만건을 돌파, 신기록을 세웠다. TV토론 방송 시간이었던 오후 8시부터 9시50분까지 약 26만건의 트윗이 발생했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중요한 이벤트에서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풍부한 이야기 꺼리가 등장, SNS 이용자의 ‘공유심’을 자극해 활발한 SNS 이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양한 정치적 의견이 등장하는 정치 이벤트, 특히 대통령 선거 기간에 SNS는 ‘공론장(Public Sphere)‘ 역할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해 트위터는 “트위터는 대통령 선거 캠페인 기간에 마을 광장(타운스퀘어, Town Square)역할을 한다”고 스스로 규정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재잘거리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SNS는 그 어떤 매체보다 빨리 여론(Public Opinion)을 형성시키고 상식(Conventional Wisdom)을 만들어 낸다.
신문, 방송 기자들이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동안에 트위터, 페이스북에서는 후보의 연설 내용, 이미지, 쟁점 들이 빠르게 확산된다.
트위터, 페이스북에서는 각 후보자의 연설이나 이미지, 쟁점들이 확산됐다. 언론에서는 잘 다루지 않은 작은 사건이 크게 확산되는가 하면 TV토론회에서 각 후보의 작은 발언도 놓치지 않고 SNS에서는 확산됐다. 트위터는 각 후보자의 핵심 메시지 전달 창구(Twitter was a campaign messaging force during the 2012 election)가 됐다.
댄 발즈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이에 대해 “SNS는 각 후보자가 발언을 하거나 행동을 시작한 24시간, 36시간 후에 모든 것을 결정시켰다. 역사상 어느 미디어보다 빨랐다”고 분석했다.
대선 캠페인 기간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후보자가 실언을 하기도 하며 예상치 못한 발언을 해서 유권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거나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강력한 지지를 유도해내기도 한다.
이 같은 ‘사건’은 상황에 따라 모멘텀(Momentum)이 되기도 한다. 지지율이 급상승하거나 급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공유심. 타운스퀘어, 공론장 등 SNS의 특성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캠페인에 활용할 줄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오바마 캠프는 이 같은 SNS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거에 즉각 이용, 모멘텀으로 삼았다. 즉 SNS 모멘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주도한 것이다.
발생된 사건을 모멘텀으로 만들어내는 도구 중 하나는 ‘해시태그(Hash Tag)’다. 해시태그는 원래 같은 주제를 묶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 졌으나 선거 기간에는 발언과 이미지, 즉 모멘텀을 공유해서 지지를 이끌어 내거나 상대 후보를 흠집내는데 사용된다(기사 : 해시태그, 선거의해 열풍 역풍 가른다)
오바마 캠프와 지지자들은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를 비꼬는 수많은 해시태그(Hash Tag)를 만들어 SNS에서 퍼트렸다.
해시태그는 특정 주제에 대한 관심, 지지 등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오바마 진영이 적극 활용했다(기사 : 미 대선후보 해시태그 선점 경쟁치열).
롬니 후보가 TV토론에서 주요 정책에 대해 자주 말을 바꾸자 오바마 캠프와 지지자들은 ‘롬니지어(#Romnesia : 롬니 이름과 기억상실증의 엠네지어 Amnesia의 합성어’를 만들어 퍼트렸다.
오바마는 선거 연설 기간에 ‘롬니지어’를 직접 언급하며 공격하기도 했다. 오바마는 캠프 기간내 연설에서 “롬니가 지난해 했던 모든 말들을 농담 취급을 하고 자신이 어떤 입장인지 잊어버렸다. 유권자들도 그러길 바라고 있다. 이를 롬니지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실제로 3차례 TV토론 동안에 롬니의 말바꾸기를 계속 공격하기도 했다.
2차 토론회 때 롬니 후보가 ‘여성들로 가득 찬 바인더(binders full of woman)’이라는 발언을 하자 오바마 캠프와 지자자들은 즉각 #binders full of woman를 만들어 냈다.
롬니 후보는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여성들의 이력서로 가득찬 바인더를 받았다며 자신이 여성 인력 채용에 힘썼다고 강조하는 뜻으로 발언했으나 이 발언은 SNS 상에서는 롬니 주변에 얼마나 여성이 없으면 타인의 추천을 받아야 했느냐는 야유에 시달려야 했다. 이 해시태그는 SNS 사용자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 TV토론의 여론을 주도해갔다.
이 단어가 얼마나 힘이 있었는지는 ‘여성들로 가득 찬 바인더’란 단어가 뉴욕타임즈가 전문가들이 선정한 것을 인용 보도한 2012년 올해의 유행어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을 정도였다.
역시 SNS 모멘텀 전쟁의 백미는 ‘빅버드’ 였다(미 대선 토론회 최대 트윗은 빅버드). 롬니 후보는 1차 TV토론회에서 “나는 세서미 스트리트가 나오는 빅버드를 좋아하지만 균형 예산을 위해 공영방송 PBS 지원은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캠프는 이 같은 발언이 나오자 마자 트위터에 계정 @Bigbird와 @firebigbird를 만들어 재빠르게 퍼트렸다. 놀랍게도 TV토론을 마칠 때 이 계정의 팔로워수는 각각 2만5000명으로 늘었다.
오바마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 다른 SNS 사이트 텀플러에 빅버드 사진을 게재하고 ‘이 친구를 잘라라’고 희화화했다. 7만명이 넘는 텀플러 이용자들이 이 사진을 노트(자신의 텀블러에 가져가는 행위)하며 확산시켰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는 이처럼 SNS에서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트위터 계정이나 페이스북 페이지를 재빠르게 만들어서 이슈를 만들어 내고 해시 태그를 붙여서 확산시키는 것은 이제 문화가 됐다.
오바마 캠프에 포진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인재들을 뺨치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데이터팀(Data Team)‘이 한 일을 보면 이 정도는 놀라운 일은 아니긴 하다.
한국 대선에서도 SNS에서 수많은 이슈가 있었다. 대부분 야당에 유리한 이슈였다.
가장 큰 이슈는 ‘야권 단일화’ 였고 그 이후 선거 과정에서도 이름도 이상한 ‘십알단’이나 ‘국정원 여직원’ 사건도 있었다. TV토론은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어떤 선거에서도 예외없이 이슈가 되는데 한국에서도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박근혜 떨어트리려 나왔다”는 발언이라든지 3차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공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대통령 자격이 의심되는 발언도 야당에 유리한 이슈였다.
하지만 야당은 결과적으로 이 같이 널린 이슈를 ‘모멘텀’으로 만드는데 실패했다고 보여진다.
SNS에서’만’ 회자되는 이슈가 선거에 전환점, 즉 모멘텀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 것이 ‘득표’와 연결이 되기 위해서는 신문, 방송 등 기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제로 미 대선에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가 1차 TV토론회 이후 2, 3차 토론 전까지 지지도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역전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콜로라도 덴버에서 벌어진 1차 TV토론 직전까지 오바마에 5% 포인트 정도 뒤지던 롬니는 토론 뒤에 49대 45로 4% 포인트 앞섰다. TV토론 이후 무려 9% 포인트 정도 지지율을 끌어 올려 역전을 한 것이다.
이는 미트 롬니 후보가 1차 토론에서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1차 토론 직후 “대선 토론에서 누가 더 잘했는가?”라는 평가에서 롬니는 72% 지지를 얻었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자들도 롬니가 더 잘했다는 평가가 50%가 넘었을 정도였다.
롬니가 만약 당선이 됐다면 그것은 1차 토론이 모멘텀이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정말 토론을 망쳤을까? 롬니는 오바마를 압도할 만큼 잘했을까?
그렇지 않다. 토론을 라디오로 들었던 사람들은 롬니와 오바마의 퍼포먼스는 비슷했다. SNS를 통해 봤던 사람들도 비슷했다. 1차 TV토론이 벌어진 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층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어느쪽이 일방적인 우세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벌어졌을까? 역시 TV와 신문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TV토론에서 대본을 쳐다보는 등 자신없는 모습을 보여줬고 롬니 후보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첫째… 둘째…”하면서 상당히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장면을 본 미국인들의 표심이 흔들렸다.
여기서끝? 아니다. 미국의 TV와 신문은 “누가 TV토론에서 이겼는가?”를 설문조사하고 다음날 신문에서도 리서치를 통해 보여주고 보도한다.
당시 NBC, ABC, CBS 등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등 신문은 “종합 분석결과 1차 토론은 롬니가 이겼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물론 롬니가 오바마보다 1차 토론에서 우세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일방적인 보도는 여론을 쏠리게 하고 결국 모멘텀을 만들어 낸다.
샨토 랜거 스탠포드 정치과학과 교수는 “1차 토론 이후 완전히 뒤바뀌었다. 모든 미디어들이 때리기를 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실제 결과보다 미디어로 인한 상처가 컸다. 뉴스는 사실 내용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에 관심이 더 많다. 이 것이 모멘텀을 만들어 낸다”고 분석했다.
한국 대선에서도 선거의 결과를 가를 수 있는 수많은 모멘텀이 발생했다. ‘소셜네트워크 선거’의 관점으로 본다면 야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거였다. 야권 단일화가 가장 큰 모멘텀이었고 1, 2, 3차에 걸친 TV토론도 표심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TV토론은 야당 후보가 2명, 여당 후보가 1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박근혜 후보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특히 야권 단일화 이벤트는 소셜에서 공유심을 폭발시켜 일거에 표심을 획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가 일방적으로 사퇴, 단일후보가 된 문재인 후보가 이를 모멘텀으로 살릴만한 기회를 잡지 못했다.
TV토론에서도 박근혜 후보가 수차례 말실수를 하는 등 객관적인 토론 성적은 좋지 않았음에도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해 나왔다”는 발언과 공격적인 태도는 소셜네트워크에서 ‘공유’ 포인트가 ‘박근혜’가 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한국의 SNS 분석기관에서는 SNS에서도 박근혜 후보가 더 많이 언급이 돼 유리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민주당 측은 TV토론을 모멘텀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오바마가 롬니 후보에게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 후보의 말실수나 태도 등을 잡아서 공유포인트를 만들어 소셜에서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했다.
여기에 야당이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보수 중심의 기존 방송과 신문이 모멘텀으로 상승할만한 보도를 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됐다고 보여진다.
(2편끝)